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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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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용 - GASPARD de la NUIT

아티스트
신창용
앨범명
GASPARD de la NUIT
발매일
2020-11-20
형태
정규
‘지나 바카우어 국제 아티스트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자’ 젊은 거장 신창용의 국내 첫 공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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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리스트

01 바흐: 사냥 칸타타 BWV.208 IX.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Arr. For Piano)

02 쇼팽: 발라드3번 내림 가장조, Op.47

03 라벨: 밤의 가스파르 M.55 I. Ondine (옹딘)

04 라벨: 밤의 가스파르 M.55 II. Le Gibet (교수대)

05 라벨: 밤의 가스파르 M.55 III. Scarbo (스카르보)

06 그라나도스: 모음곡 中 I. Los Requiebros (사랑의 속삭임)

07 드뷔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L.75 III. Clair De Lune (달빛)



앨범 설명

피아니스트 신창용은 2018년 미국의 지명도 높은 피아노 경연인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주를 처음으로 본 것은 같은 해 교향악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연주한 곡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더불어 피아니스트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무시무시한 화음의 향연, 총알같이 스피드를 요구하는 빠른 악구와 더불어 손가락이 고난도 발레를 하는 듯한 곡이다. 난곡 중의 난곡임에도 불구하고 신창용은 라흐마니노프가 호로비츠에게 했던 표현처럼 ‘곡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곡에 대한 완벽한 장악력, 빛나는 테크닉, 혼신의 몰입이 합쳐져, 대중성 높은 레퍼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아냈다. 그에 대한 좋은 첫인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신창용은 음반 작업에도 열성을 보이는데 스타인웨이 & 선스 레이블로 벌써 2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첫 음반은 미국 최대 클래식 라디오 채널인 WQXR에서 ‘2018 최고의 음반들’에 선정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이번에는 스톰프뮤직에서 신보를 내놓음으로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바흐부터 라벨까지 폭넓은 레퍼터리를 통해 감상자를 매혹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음반의 첫 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로 시작한다. 본래 세속 칸타타인 사냥 칸타타 BWV 208 중 소프라노 아리아가 원곡이나, 곡의 높은 유명세 덕분에 오늘날 독립되어 주로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된다. 바흐의 목가적인 서정성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목가적인 정취는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그리운 정서이다. 피아노 솔로 버전을 연주한 신창용은 섬세한 감수성으로 평안과 안식을 선사한다. 학구적이고 딱딱한 바흐는 찾아볼 수 없다.

쇼팽의 '발라드 3번' Op.47 A플랫장조는 4곡의 발라드 중 가장 밝고 고혹적인 곡이다. 알레그레토의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소프라노 성부에서 질문을 던지면 테너 성부가 시큰둥하게 응답을 한다. 이번에는 베이스 파트에서 질문을 던지고 그제서야 소프라노 성부가 ‘Yes’에 해당하는 응답을 한다. 이제 샹들리에에 불이 켜지고 남녀가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사교모임이 열리는 듯 곡이 진행된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이 곡은 파리 사교계를 대표하는 누아유 공작의 딸 폴린 드 누아유에게 헌정되었다.
1841년 작곡된 발라드 3번에서는 연인 조르주 상드의 노앙 저택에서 안락함을 즐기는 쇼팽의 모습이 엿보인다. 몇몇 부분에서는 물의 희롱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 곡이 폴란드의 민족시인 아담 미츠키비츠의 시 ‘물의 요정, 운디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발라드가 본디 설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곡의 후반에는 왼손의 빠른 16분음표의 음형과 재빠른 화음의 도약을 통해 에튜드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독주자에 명인기를 발휘할 기회도 제공한다. 결국 처음의 주제가 웅장한 화음을 통해 강하게 재현되고 확신에 찬 결말로 향한다.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는 스트라빈스키 '페트뤼시카 중 3개의 악장'과 함께 모던 피아노 레퍼터리 중 테크닉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대작이 적은 라벨에 있어서 이 곡은 피아노 레퍼터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많은 청년 피아니스트들이 여전히 콩쿠르 본선에서 이 곡을 선택해 출전하고 있다. 총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밤의 가스파르'는 알로와주 베르트랑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일종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시라고도 할 수 있다.
1곡은 물의 요정인 ‘옹딘’으로 쇼팽 '발라드 3번'에서 소개한 운디네의 프랑스어이다. 물의 파동을 연상시키는, 잘게 다진 마이크로 리듬이 오른손에 흐르고 왼손은 옹딘의 유혹적인 가락을 노래한다. 몽환적이고 야릇한 분위기가 전반에 깔려 있는데 이는 육지의 남성을 유혹하는 옹딘의 관능성을 탐미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끝부분에는 느릿한 낭독조의 모놀로그가 있은 뒤 마치 웃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분산화음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다. 옹딘이 사라지듯 조용히 잦아들며 끝나는 구성은 베르트랑의 시 마지막 구절의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물의 요정이 남성에게 프로포즈를 하자 그는 인간 여성을 사랑한다 답했다. 옹딘은 투정 부리며 흐느끼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물방울이 되어 창문에 김을 서리게 한 뒤 소나기에 사라져 버렸다.”
2곡 ‘교수대’는 시종일관 음침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조용히 울리는 종소리가 전곡을 관통하는데 4/4박자에서 8분음표 7개의 분량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연주자의 전두엽을 혹사시키는 곡이다. 베르트랑의 마지막 싯구는 다음과 같다. “지평선 너머 마을의 벽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새빨간 석양을 불들이는 목 매달린 시체..”
3곡 ‘스카르보’의 제목은 우리말로 도깨비쯤에 해당된다. 스케르초의 정서가 지배적인 ‘스카르보’는 '밤의 가스파르' 3곡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기교를 요한다. 빠른 반복음, 날렵한 손가락의 유희, 리스트 풍의 압도적인 화음 ‘폭풍’ 등 명인기를 한 데 모아 그야말로 ‘괴물’을 만든 것이다. 라벨은 난곡으로 소문난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더 어려운 곡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곡은 절정으로 솟구치다 “꺼져가는 양초처럼 얼굴이 창백해진 스카르보는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라는 시의 내용처럼 홀연히 사라지며 끝난다. 극악의 난이도만큼 피아니스트에게 도전의식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곡이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처음 보고 이 곡이 두 손으로 치는 곡 맞는지 두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신창용은 피아노의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인 빠른 연타를 능숙하게 처리하며, 민첩한 순발력으로 신출귀몰하는 스카르보의 장난기 가득한 캐릭터를 한껏 살리고 있다.

그라나도스는 알베니스, 퍄야와 더불어 스페인 근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피아노의 명인기에 중점을 두었던 알베니스와 달리 그라나도스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에 능했다. 알베니스가 ‘스페인의 리스트’였다면 그라나도스는 ‘스페인의 쇼팽’에 비할 수 있다. '고예스카스'는 1911년 작곡된 피아노 모음곡으로, 제목은 스페인의 독보적 화가인 ‘’고야의 스타일로’’라는 의미이다. 1곡 ‘사랑의 속삭임’은 처음 듣자 마자 스페인 음악의 ‘DNA’를 느낄 수 있다. 기타의 음률을 연상시키는 반주에 캐스터네츠의 연타를 닮은 강렬한 꾸밈음이 건반을 종횡무진 누빈다.

드뷔시의 초창기 피아노 곡 중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3곡 ‘달빛’이 음반의 마지막 곡으로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그는 서양음악의 장단조 체계, 리듬, 기능화음 등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든 ‘조용한 파괴자’였다. ‘달빛’은 아직 작곡가의 음악적 지향점이 확립되기 전의 곡이지만 그 덕분에 높은 대중성을 누리고 있다. ‘달빛’은 구불거리는 멜로디 라인이 오묘한 효과를 발휘하고 중간부분의 분산화음이 충만한 황홀감을 준다. 드뷔시의 도회적인 몽환은, 바흐의 평안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여정의 훌륭한 종착지이다. 신창용은 이 음반에서 바흐의 조용한 안식에서 쇼팽의 화려함으로, 라벨의 기괴함에서 그라나도스의 찬란한 태양빛을 거쳐 드뷔시가 그려낸 은밀한 밤의 세계까지 팔색조 같은 매력을 보여준다. 감상자는 피아니스트가 정성껏 직조한 마법 양탄자를 타고 흥미로운 음악 여정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다.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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