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3.29 연합뉴스] <공연리뷰> 윤홍천 피아노 리사이틀 '방랑자'

  • 날짜
    2015-03-30 10: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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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3/29/0200000000AKR20150329028200005.HTML?input=1195m

<공연리뷰> 윤홍천 피아노 리사이틀 '방랑자'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방랑을 결심한 피아니스트가 무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흐가 형과의 작별에 부쳐 작곡한 카프리치오를 첫 곡으로 선택한 그는 방랑길에 나서기를 주저하듯 평소의 그답지 않게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돌연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제8번 2악장의 전반부가 반복되던 바로 그때, '느리고 노래하듯이, 풍부한 표정을 담아'(Andante cantabile con espressione)라는 이 악장의 악상 지시 그대로 그가 만들어낸 음표들은 다채로운 표정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짧은 스타카토로 표현된 16분 음표는 마치 노래하는 듯했고, 작은 장식음 하나에도 섬세한 감성이 묻어났다. 과연 그는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릴 만했다.

<<스톰프뮤직 제공>>

지난 28일 예술의전당 IBK홀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윤홍천은 '방랑자'라는 주제로 리사이틀을 열었다. 그동안 국내보다는 주로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던 그는 지난해 금호아트홀에서의 리사이틀에서 영감 넘치는 슈베르트 연주를 선보이는 등 몇 차례의 국내 공연과 여러 음반을 통해 국내 음악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사이 국내에서도 윤홍천의 팬이 늘어난 탓인지 이번 리사이틀에선 IBK홀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관객들로 붐볐다.

이번 공연에선 바흐로 시작해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으로 마무리된 프로그램 자체도 지극히 흥미로웠다. 바흐의 사랑하는 형과 작별에 부치는 카프리치오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사이에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슈만의 가곡 등을 삽입한 선곡은 마치 방랑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의 대본 같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의 경우 특별한 표제가 붙어 있는 작품이 아님에도 이번 공연의 흐름과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바흐의 카프리치오 연주 후에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매우 격정적인 a단조의 소나타 제8번이 연주되었는데, 이 곡은 마치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해야 하는 방랑자의 고통과 슬픔을 나타내는 듯했다. 이 소나타 1악장에서 조금은 급하게 몰아치듯 연주를 시작한 윤홍천은 2악장에 이르러 제 페이스를 찾은 듯 꿈결 같은 피아노 톤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본격적인 방랑의 길에 들어섰다.

<스톰프뮤직 제공>>

모차르트 소나타 8번에 이어 연주된 리스트 편곡의 슈베르트의 '송어'와 슈만의 '봄밤'은 마치 방랑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맑은 물에서 뛰노는 '송어'를 구경하고 '봄밤'의 정취에 취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두 곡 중 '송어'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의 4악장 주제로도 잘 알려진 가곡이다. 그 경쾌한 멜로디가 맑은 물에서 뛰노는 송어의 모습만을 묘사한 듯하다. 하지만 실상 이 가곡의 중간 부분엔 송어를 지켜보던 화자가 송어를 낚아채는 낚시꾼을 '도둑'이라 부르며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윤홍천은 낚시꾼에게 분노하며 잡힌 송어를 불쌍히 여기는 방랑자의 마음을 나타내듯 격한 어조로 피아노를 연주해 이 곡의 참맛을 잘 살려냈다.

공연 후반부 첫 곡으로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연주에선 특히 2악장에서 방랑자의 고독감이 진하게 표현돼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방랑자'라는 주제로 기획된 이번 공연에서 이 소나타를 선곡한 것도 바로 2악장에 담긴 독특한 감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피아노(p, 여리게)와 포르테(f, 세게)를 오가며 강약의 대비가 심한 이 악장의 초입부터 포르테로 연주된 코드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고, 고독과 고통을 오가는 방랑자의 혼란스런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단연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이었다. 이 곡은 유기적인 짜임새와 다채로운 감성, 활력 넘치는 리듬이 살아나 있는 명곡으로, 실제 무대에서 완벽하게 연주해내기 쉽지 않은 곡이다.  

그러나 윤홍천은 특히 느린 두 번째 부분에서 영감 넘치는 연주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herena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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